지난 편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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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한자 마음으로 써내려간 로버트 김의 편지입니다.


3.1절을 맞이하면서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011-03-09
삼일절을 보내면서 당시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92년 전, 1919년 기미년(己未年) 3월 1일에 우리의 선열들께서는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서울 종로에 있는 파고다 공원에 모여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찾기 위해서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우리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셨습니다. 특히 이곳에 모이신 민족 대표 33인들은 일본제국주의 경찰(순사)들의 눈을 피해 숨어서 독립선언문을 초안하고 이를 발표하는 집회를 모의했다고 합니다. 이 만세운동이 있은 후 이들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온갖 모진 고문을 받다가 감옥에서 돌아가신 선열들도 계십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10년 경술년(庚戌年)에 조선황제가 조선에 관한 모든 통치권을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넘겨주고 일본 황제는 이를 수락하는 동시에 완전히 조선을 일본에 병합하는 것을 승낙하는 한일합방조약이 공포되었습니다. 이날을 국치일(國恥日)이라고 하는데, 이날부터 한반도에 일본의 식민지통치가 본격화되고 우리 민족은 갖은 수탈과 억압에 시달렸던 것입니다.

이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고 9년 후, 1919년 기미년 3월 1일에 파고다 공원에 33인의 독립운동 선열들이 모여 일본의 강점(强占)으로 조선반도를 빼앗기고 민족의 얼까지 약탈하는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기 위해서 목숨과 가족을 희생시키면서 태극기를 만들어 이곳에 모여 만세를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기리기 위해서 이날을 3.1절로 정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날 독립선언문을 읽고 만세를 부른 이들은 나라 사랑과 민족 사랑이 이들의 피 안에 흘렀던 것이며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초석(礎石)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독립은 이뤄지지 않았고, 오랫동안 식민지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게 항복하고 일본사람들이 한반도에서 물러가면서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하게 되는데, 한일합방 이후 36년 동안 우리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은 식민지 국민으로서 한국말과 한글을 못 쓰게 되고 성(姓)마저 바꿔야하는 치욕을 받고 살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은 아직도 반일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한일전 운동경기 같은 것이 있게 되면 이 반일감정이 절정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어언 66년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우리와 이념을 달리하는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그곳에 사는 우리 동포는 일본 식민지하에서 보다 더 혹독한 고통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이 북한정권은 남한을 삼키고자 1950년에 전쟁을 일으켰으나 실패로 돌아간 후 아직도 호시탐탐 도발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북한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북한 공산당에게 세뇌되어 기아(飢餓)로 고생을 하면서도 오직 김정일만이 그들을 먹여 살려줄 수 있는 구세주(救世主)라고 66년 동안 믿고 있습니다. 이들은 남한의 동족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풍요로움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살고 있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러나 식민지하의 생활보다 더 못한 독재정권이 있는 북한세상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남한에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남한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도 자신들이 동경하는 이 이념을 가르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우리의 역사까지 부인하면서 교단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선생들에게 배우는 어린이들은 이제 3.1절이나 광복절이 무엇을 기념하는 날인지,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누가 이 전쟁을 일으켰는지도 모르면서 우리나라에서 자라게 되어 이들이 성장해서 어떠한 지도자가 될지 또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지금 많은 초등학교 학생들은 3.1절이 무슨 날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安重根 義士)는 3.1절에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醫師)라고 대답하는 학생도 있었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학교를 세워 인재양성을 하다가 한반도 침략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만주의 이권을 러시아와 협의하러 온 때에 하얼빈 역에서 그를 저격하고 그 곳에서 체포되어 형장(刑場)의 이슬로 사라지신 독립애국자입니다. 이 사건은 1909년에 있었고 3.1운동은 1919년에 있는데도 이를 분간 못하는 것을 보면 학교나 가정에서 어린이 역사교육이 영어나 수학교육에 밀려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에 교사경험도 있었고 현재 장관이라는 분이 우리 태극기(太極旗)를 태국기로 알고 있는 것은 그리 우스운 일도 아닙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선생님뿐 아니라 부모들의 몫이라는 것을 통감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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